[트럼프발 코인패권] 정경유착·밀거래 등 무법지대 가상자산...중심에는 트럼프家

미국 전·현직 규제 당국자들과 국제 탐사보도기관들이 연이어 경고해온 ‘가상자산 기반의 불법 밀거래 및 자금 세탁’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취임 직후 가상자산 관련 자금세탁과 불법 밀거래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인물을 사면하고, 가문 기업과 가상자산 업계의 자금 결속이 강화되며 가상자산의 무법지대화와 정경유착이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제미나이 생성)
(사진=제미나이 생성)

가장 논란이 컸던 사안은 다크웹 기반 암거래 사이트 ‘실크로드(Silk Road)’ 운영자 ‘로스 울브리히트(Ross Ulbrihit)’의 사면이다. 실크로드는 인신매매 및 마약 거래에 비트코인을 사용했으며 가상자산을 통해 불법 밀거래를 행한 가장 큰 범죄 사이트로 취급 받는다. 트럼프는 대선 공약으로 울브리히트 사면을 내걸었고 취임 직후 사면을 단행하며 마약 합법화를 주장해왔던 극우 성향 유권자와 자유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었다.

이에 더해 자금세탁방지법(AML) 위반으로 유죄를 선도받았던 비트멕스(BitMEX)의 공동창업자 3명과 바이낸스 CEO 창펑 자오(Changpeng Zhao)까지 연달아 사면했다. 이에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이러한 사면 조치가 “가상자산을 활용한 마약·무기 거래자들의 신원과 활동 내역을 숨기는 행위를 정부가 눈감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상자산을 통한 불법 거래를 공식 허락한 격이라는 비판이다.

▲바이낸스 창립자 창펑 자오  (사진=바이낸스 공식 X)
▲바이낸스 창립자 창펑 자오 (사진=바이낸스 공식 X)

정경유착 의혹도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취임 직후 미국의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일제히 거액을 기부했다. 제미니(Gemini)는 100만 달러 상당 비트코인을 취임캠프에 기부했으며 크라켄(Kraken), 크립토닷컴(Crypto.com), 코인베이스(Coinbase)는 취임위원회에 각각 100만 달러 기부한 바 있다.

또 바이낸스의 창펑 자오는 사면 직전 트럼프 일가와 연계된 스테이블코인 USD1을 사용하는 UAE 펀드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 9448억 원) 투자를 유치했으며, WLFI와 동일 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바이낸스가 USD1 관련 이벤트를 발표한 직후 USD1의 시가총액이 27억 4000만 달러에서 28억 9000만 달러로 급등하기도 했다.

트론(Tron) 공동창립자 저스틴 선(Justin Sun) 역시 트럼프 가문의 가상자산 기업 WLFI(World Liberty Financial)의 최대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선에 대한 증권 사기 혐의 조사 집행정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가상자산 운용사 하이퍼리즘의 오상록 대표는 ‘TRUMP’ 밈코인 보유량이 약 300만 달러(약 42억 9570만 원)로 추정되며 13번째 대주주로서 트럼프의 비공개 만찬에 초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퍼리즘은 최근 디파이(DeFi) 영역에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신상품 위험 평가 없이 이자 수익형 상품을 출시해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리차드 브리폴트(Richard Briffault) 컬럼비아 법학대학 교수 (사진=컬럼비아 대학교 제공)
▲리차드 브리폴트(Richard Briffault) 컬럼비아 법학대학 교수 (사진=컬럼비아 대학교 제공)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친(親) 디지털자산 정책이 산업 진흥보다는 불법 자금 흐름 확대·시장 혼탁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ICIJ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거래소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불법 자금과 연루된 계정의 거래량이 늘어났으며, 사면 이후 규제 강도도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사법부가 2024년 말 폐지한 국가 암호화폐 집행팀(National Crypto Enforcement Team)의 공백은 시장 내 감시 기능을 더욱 약화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리차드 브리폴트(Richard Briffault) 컬럼비아 법학대학 교수는 “트럼프는 자신의 밈 코인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사적으로 만나는 등 ‘접근권’을 판다”며 “이는 대통령 권한을 개인적 이익으로 사용하는 부패 행위”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에는 엘리사 슬롯킨 의원을 포함한 20명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가 공직을 자신의 가상자산 사업 이익에 이용하고 있다”며 ‘가상자산 부패 근절 법안(End Crypto Corruption Act)’을 공동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대통령, 부통령, 백악관 고위직과 친인척은 재직 중과 퇴임 후 1년까지 가상자산을 발행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6개월 넘도록 마땅한 조치가 없어 사실상 무산된 것과 같으나,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가문의 가상자산 사업이 시장 혼란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번진 도화선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트럼프 정권과 가상자산 불신 기조에 대해 “여전히 가상자산을 자금 세탁 및 범죄의 통로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속상하다”고 전했다. 반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사면과 기부를 명목으로 한 투자 유치는 사실상 ‘뇌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규제 완화와 뇌물로 불법 자금 흐름이 확대된다면 시장 신뢰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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