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루블 중심, 디지털자산 제도권 편입 속도 관련 법 대통령 서명 후 지난달부터 시행∙∙∙본격 상용화로 이어져 시중은행서도 관련 서비스 확대∙∙∙공공부문, 국경 간 거래 등으로 넓어져
러시아가 디지털 루블을 중심으로 디지털자산의 제도권 편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올해 8월 ‘디지털 화폐 및 디지털 권리에 관한 법’에 서명한 데 이어 지난달부터 관련 법 시행과 디지털 루블 상용화가 본격화됐다.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시중은행의 관련 서비스도 확대되면서 디지털 루블의 활용 범위가 결제∙송금에서 공공부문과 국경 간 거래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영국 로이터는 6일(현지시각) 러시아 중앙은행이 디지털 루블 출시 첫 달 22만 개 이상의 계좌가 개설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중앙은행이 애초 예상한 6만여 개를 3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디지털 루블에 대한 일부 대중의 회의적인 시각과 은행권의 반발에도 계좌 개설 규모가 기존 전망을 크게 넘어선 셈이다.
‘디지털 루블’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다. 현금∙은행 계좌의 루블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계좌를 개설해 송금과 결제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러시아는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9월 1일부터 디지털 루블을 본격 상용화했다. 디지털 루블을 국경 간 결제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중앙은행에 이어 시중은행도 디지털 루블 계좌 관련 서비스 확대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대형 국영은행 VTB는 개인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디지털 루블 계좌 개설과 송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1500곳 이상의 기업 고객이 디지털 루블 계좌 개설을 준비 중이다. 기업은 디지털 루블을 활용한 기업 간(B2B) 결제와 직원 급여 지급 등도 이용할 수 있다.
가즈프롬방크도 지난달 1일부터 디지털 루블 관련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개인은 모바일앱을 통해 디지털 루블 계좌를 개설하고 충전과 인출, 송금∙결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기업에는 기업용 온라인뱅킹에서 계좌 개설과 기업 간 결제, 정부 관련 지급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QR코드를 이용한 상품∙서비스 결제도 지원한다.
PSB는 2023년부터 중앙은행 시범사업에 참여해 고객의 디지털 루블 송금과 QR 결제 등 다양한 거래를 진행해 왔으며, 소브콤방크도 비대면 뱅킹을 통한 디지털 루블 계좌 개설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디지털 루블은 시중은행이 제공하는 기존 디지털 결제 수단과는 구조가 다르다. 이용자는 시중은행에서 계좌 개설과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디지털 루블은 중앙은행 플랫폼에서 직접 관리된다.
한편 러시아는 서방 경제 제재 이후 디지털 루블 개발과 활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잇따라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금융망 일부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브릭스(BRICS) 회원국인 중국∙인도 등과의 자금 거래가 복잡해지자 디지털 루블을 새로운 지급 수단으로 육성해 왔다.
제도적 기반도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올해 9월 1일부터 주요 은행이 고객에게 디지털 루블 계좌 개설과 송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내년 9월부터는 범용 라이선스를 보유한 은행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이듬해 9월에는 나머지 은행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소매기업의 디지털 루블 결제 지원 의무도 매출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이 같은 정책은 실제 활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재무부는 이달 1일부터 일부 직원에게 처음으로 디지털 루블로 임금을 지급했다. 임금 수령은 의무가 아닌 자율적 선택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급 대상 인원과 총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중앙은행과 재무부는 연방 예산 부문에서도 디지털 루블 도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러시아 국민의 반응은 엇갈린다. 러시아 구인∙구직 플랫폼 슈퍼잡이 올해 1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7%가 이 같은 방식의 급여 지급에 반대했다. 반면 VTB의 8월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가 ‘디지털 루블로 임금을 받을 의향이 있다’고, 이 중 16%는 ‘별도의 조건 없이 수령하겠다’고 답했다.
러시아 정부는 디지털 루블의 대중적 인식을 높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디지털 루블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지난달 금융당국에 기존 전자결제와 디지털 루블의 차이와 장점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