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겨울 속 ST 인력 확보·PoC 추진…블록체인 전략 ‘제도권 금융’으로 이동
2025년 DAP 구축 본격화…온체인 금융·‘디지털자산 전문 증권사’로 확장

2021년 가상자산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블록체인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한화에 2022년은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테라·루나 사태를 시작으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고, 그해 말 세계 3위권 가상자산 거래소였던 FTX까지 파산했다. 국내외 블록체인·웹3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고 사업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한화 역시 시장 침체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한화투자증권이 2021년 583억 원에 취득한 두나무 지분은 한때 수천억 원 규모의 평가가치를 기록했지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장부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2021년 말 약 6514억 원이었던 두나무 지분 장부가치는 2022년 말 3348억 원, 2023년 말 3247억 원 수준까지 낮아졌다.
그럼에도 한화가 블록체인에서 완전히 손을 뗀 흔적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공개자료를 따라가면 시장 침체기를 거치며 한화의 관심이 가상자산 자체에서 토큰증권(ST)과 분산원장, 제도권 금융에 적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인프라로 점차 이동한 모습이 나타난다.
두나무 가치 반토막…그래도 지분은 남았다
크립토 겨울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곳은 두나무였다. 한화투자증권은 2021년 퀄컴으로부터 두나무 지분 약 6%를 취득했다. 업비트의 급성장과 함께 투자 직후 지분 가치가 급등했지만 2022년부터 상황은 반전됐다.
가상자산 가격 하락과 거래량 감소로 두나무의 기업가치가 낮아지면서 한화가 보유한 지분의 평가가치도 크게 줄었다. 2024년에도 한화투자증권은 두나무 지분 약 5.97%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장부상 가치는 2021년 말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내려온 상태였다. 그럼에도 한화는 두나무 지분을 정리하지 않고 보유를 이어갔다.
그룹 내부의 블록체인 기술 활용도 계속됐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2023년 블록체인 솔루션 기업 편람에는 한화시스템이 2022년 H-Chain을 활용해 사내 추첨·리워드·NFT 배지 등을 포함한 블록체인 기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가 담겼다. 한화시스템은 당시 H-Chain을 자산 유동화와 증권형 토큰 관리까지 지원할 수 있는 기업용 블록체인 솔루션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가상자산 시장의 가격과 거래량은 급격히 위축됐지만, 블록체인을 실제 금융·기업 시스템에 적용하려는 시도까지 중단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코인’ 대신 토큰증권…블록체인이 금융 안으로 들어왔다
분기점은 2023년이었다. 금융위원회는 그해 2월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토큰증권’을 제도권 증권의 새로운 발행 형태로 수용하는 내용의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했다. 가상자산과 별도로 기존 자본시장 규율 안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가 앞서 확보했던 블록체인 기술과 투자 네트워크도 이 시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나무에서 분사한 람다256은 한화투자증권과 토큰증권 시스템에 대한 개념검증(PoC)을 진행했다. 람다256 관계자는 넥스블록에 “한화투자증권과 증권사 업무 환경에 블록체인 기반 토큰증권 인프라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PoC를 진행해 2023년 4월 완료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검증 범위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람다256 측은 “세부 검증 항목과 결과는 고객사와의 프로젝트 정보여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당시 PoC가 한화투자증권 내부 시스템의 어떤 기능까지 검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람다256은 같은 해 자체 블록체인 솔루션 루니버스를 활용해 한화투자증권 등 증권사들과 다양한 ST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화투자증권 내부에서도 관련 준비가 이어졌다. 회사는 2023년 12월 ST 기획 경력직 채용에 나섰고, 담당 업무에는 ST 플랫폼 구축 및 PM·PO, 분산원장 기술 검토가 명시됐다. 블록체인이나 토큰증권, 핀테크 프로젝트 경험자를 우대한다는 조건도 붙었으며 채용은 2024년 2월까지 이어졌다.
크립토 겨울이 이어지던 시기에도 블록체인 관련 역량을 없애기보다 금융상품 발행과 유통에 적용할 수 있는 토큰증권 플랫폼을 준비한 흔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려한 신규 투자보다 ‘인프라 준비’…2024년의 한화
2024년 한화의 행보는 2020~2021년처럼 대규모 신규 블록체인 투자 발표가 이어지는 모습과는 달랐다. 외형적으로는 조용했지만 시장에서는 한화가 이미 확보한 투자 자산과 기술 경험의 연결 가능성에 주목했다.
키움증권은 2024년 3월 보고서에서 한화투자증권이 두나무 지분 약 6%를 보유한 데다 람다256과 STO 플랫폼 기능검증을 진행했고, 그룹 차원의 H-Chain과 관련 블록체인 사업 경험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보고서는 한화투자증권이 가상자산 시장과 제도권 금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증권업계의 당시 평가였지만, 한화가 보유한 자산을 단순한 가상자산 지분투자가 아니라 토큰증권을 비롯한 새로운 금융 인프라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신규 가상자산 기업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보다 기존 투자와 기술을 제도권 금융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준비하는 데 무게가 실렸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한화가 블록체인에서 철수했다기보다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2025년 DAP 착수…‘토큰증권’에서 ‘온체인 금융’으로
그동안의 준비가 외부로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2025년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디지털자산 플랫폼(DAP) 구축에 공식 착수했다. 목표는 기존 금융상품을 단순히 토큰 형태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디지털자산의 발행과 보관, 거래 전 과정을 블록체인에서 처리하는 ‘온체인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플랫폼 구상도 이전의 토큰증권 실험보다 넓어졌다. 한화투자증권은 자체 플랫폼에 토큰화 기술뿐 아니라 온체인 데이터, 커스터디와 월렛, 디지털자산·토큰증권 서비스를 연결하고 유관 사업자들이 참여하는 서브넷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손종민 당시 한화투자증권 기획관리실 상무는 “이번 플랫폼은 단순히 금융상품을 토큰 형태로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투자 환경 전반을 블록체인 디지털 기술로 전환하는 ‘온체인화’ 전략의 핵심 과제”라고 설명했다. 같은 해 말 한화투자증권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자산 전문 증권사로의 전환’과 ‘Global No.1 RWA Hub’를 공식 비전으로 제시했다.
다만 2023년 람다256과 진행한 토큰증권 PoC와 2025년 DAP 구축 사이에 직접적인 기술적 연계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람다256 측은 “고객사의 개별 사업 추진 현황과 협력 여부는 고객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범위에서만 말씀드릴 수 있다”며 한화투자증권의 DAP 구축 과정에서 현재 협업 중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20~2021년 한화의 블록체인 행보가 데이터 기업과 거래소,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로 시작됐다면 크립토 겨울을 지나면서 무게중심은 조금씩 달라졌다. 가상자산 가격과 거래량에 기대는 시장에서 증권을 블록체인에 올리고, 기관이 사용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를 만드는 방향으로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두나무 지분의 평가가치는 크게 흔들렸지만 한화는 지분을 유지했고, 람다256과 토큰증권 기술을 검증했으며 관련 인력을 채용했다. 이후 한화투자증권은 2025년 별도의 디지털자산 플랫폼 구축에 착수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행보가 처음부터 하나의 장기계획 아래 진행됐는지, 크립토 겨울을 거치면서 전략을 새롭게 수정한 결과인지는 공개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한화가 시장 침체기를 지나면서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초점을 ‘가상자산 시장에 투자하는 것’에서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금융 안에서 다룰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으로 넓혔다는 점이다. 그리고 2026년 한화는 다시 투자를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는 쟁글, 두나무, 크리서스, 시큐리타이즈, Digital Asset 등 한화가 최근 확보한 투자 자산을 하나씩 뜯어보고, 이들이 실제 하나의 디지털금융 시스템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