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기업들 ‘잇따라 AI로’⋯ 감원·사업재편 명분 되나

AI 피봇 내세운 크립토 기업들…감원도 ‘전략’으로 포장
디스프레드 “구조조정 넘어 내러티브 재편…기관 시대와 맞물려”
MARA, 비트코인 매각해 부채 줄이고 AI·HPC 인프라 확장

▲크립토 벤처 투자·M&A 건수 추이. 2025년 이후 월간 VC 딜 수가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자금조달과 인수합병 모두 이전 대비 둔화 흐름을 나타냈다. (출처=디스프레드 보고서 재인용(원자료=Blockworks·RootData))
▲크립토 벤처 투자·M&A 건수 추이. 2025년 이후 월간 VC 딜 수가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자금조달과 인수합병 모두 이전 대비 둔화 흐름을 나타냈다. (출처=디스프레드 보고서 재인용(원자료=Blockworks·RootData))

최근 크립토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전환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크립토 기업들이 AI에 자본과 인력을 빼앗긴 상황에서, 불가피한 비용 절감을 ‘전략적 피봇’으로 재포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Block, Gemini, Crypto.com 등은 최근 몇 주 사이 대규모 감원과 함께 AI 피봇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디스프레드의 보고서 ‘내러티브 구조조정: 크립토의 기관 시대와 AI 피봇’에 따르면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시장의 지배적 담론을 활용하는 ‘내러티브 구조조정(Narrative Restructuring)’으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2022년 크립토 윈터 당시 감축이 시장 악화에 따른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면, 2026년에는 같은 비용 절감이 ‘AI 시대의 선제적 적응’이라는 이야기로 포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벤처캐피털(VC) 투자의 절반 이상이 AI 섹터로 집중되면서 크립토 VC 딜 수는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크립토 기업들은 AI에 자본과 인력을 빼앗긴 상태에서 역으로 AI를 내러티브로 활용해 불가피한 비용 절감을 ‘전략적 피봇’으로 재포장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Block는 전체 인력의 40%에 해당하는 4000명, Gemini는 30%, Crypto.com은 12%를 각각 줄이며 ‘AI 피봇’을 명분으로 내세운 사례로 제시됐다.

디스프레드는 2026년의 감축이 2022년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2022년 크립토 윈터 당시에는 테라·루나 붕괴, FTX 파산,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자산 이탈 등으로 인한 비용 절감이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졌지만, 2026년에는 같은 구조조정이 ‘전략적 AI 피봇’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위기 대응이 아닌 미래 선점이라는 메시지를 투자자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다만 AI 피봇이 곧바로 실질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기술 채택 자체는 유효하지만, 이를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전용하는 것과 실제 제품 전환, 매출 증가를 연결하는 것은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디스프레드는 결국 중요한 것은 AI 내러티브의 크기가 아니라 핵심 사업이 기관화 및 규제화라는 거시적 전환 속에서 어떤 포지션을 확보하고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디스프레드는 크립토 업계의 구조적 재편이 AI 피봇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기관 시대’ 진입과 맞물려 있다고 봤다. 기관 자금의 유입은 산업의 성격을 ‘크립토 네이티브의 실험’에서 ‘제도권 금융의 확장’으로 바꾸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은 존재 이유의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기관 자금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이 구축하고 있는 만큼, 이 교차점에 위치한 기업이 향후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가상자산 시가총액 추이. 그레이스케일은 2026년을 ‘기관 시대의 도래’로 규정하며 규제 명확성 개선과 대체 가치 저장 수요 확대가 자본 유입을 이끌 것으로 봤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전체 디지털자산 시가총액은 2025년 들어 3조달러를 웃돌았다. (출처=그레이스케일 ‘2026 Digital Asset Outlook: Dawn of the Institutional Era’)
▲가상자산 시가총액 추이. 그레이스케일은 2026년을 ‘기관 시대의 도래’로 규정하며 규제 명확성 개선과 대체 가치 저장 수요 확대가 자본 유입을 이끌 것으로 봤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전체 디지털자산 시가총액은 2025년 들어 3조달러를 웃돌았다. (출처=그레이스케일 ‘2026 Digital Asset Outlook: Dawn of the Institutional Era’)

한편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AI·인프라 확장을 직접 언급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마라 홀딩스(MARA)는 26일 발표를 통해 3월 4일부터 25일까지 1만5133비트코인을 약 11억달러에 매각했으며, 이를 전환사채 재매입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MARA는 이 거래를 통해 약 88.1백만달러의 현금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순수 비트코인 채굴 기업을 넘어 디지털 에너지와 AI·고성능컴퓨팅(HPC) 인프라로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ARA 비트코인 보유량 추이. 3월 말 기준 비트코인 보유량이 약 3만8689개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보유 자산의 달러 가치와 주당 비트코인 보유량도 함께 낮아진 모습이다. (출처=비트코인트레저리스(BitcoinTreasuries))
▲MARA 비트코인 보유량 추이. 3월 말 기준 비트코인 보유량이 약 3만8689개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보유 자산의 달러 가치와 주당 비트코인 보유량도 함께 낮아진 모습이다. (출처=비트코인트레저리스(BitcoinTreasuries))

결국 최근 크립토 업계의 AI 피봇은 기술 도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디스프레드 보고서가 짚었듯 일부 기업에는 비용 절감과 조직 축소를 설명하는 새로운 서사가 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MARA처럼 실제 인프라 확장 전략과 맞물리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의 관심은 이 같은 AI 전환이 일시적 내러티브에 그칠지, 실질적인 사업 모델 변화로 이어질지에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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