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블록체인’ 기술이 바꿀 펀드 4.0 시대 온다

▲여의도증권가 (사진=이투데이)
▲여의도증권가 (사진=이투데이)

자산운용 업계가 기술 혁신을 발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뮤추얼펀드로 대표되는 1.0 시대, 상장지수펀드(ETF)와 헤지펀드가 주도한 2.0 시대, 스마트베타와 로보어드바이저가 확산한 3.0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공지능(AI)·블록체인 펀드, ESG 펀드 등으로 상징되는 펀드 4.0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펀드 4.0은 단순한 투자 대상 확대가 아니라, AI와 블록체인 기술이 펀드 운용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흐름이다. 투자의사 결정에서 자산 관리, 고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혁신되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은 23일 ‘SOL 한국AI소프트웨어 ETF’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국내 AI 대표 기업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은 상품으로, AI 확산 흐름을 반영한 전략적 출시라는 설명이다.

블록체인 기반 상품도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블랙록 등 글로벌 운용사들이 가상자산 현물 ETF를 상장하면서 23일 기준 전 세계 가상자산 ETF 규모는 1753억 달러(약 244조 원)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는 현물 ETF가 아직 허용되지 않았지만, 정부·여당이 도입을 본격 검토 중이어서 제도권 편입이 가시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 사례가 나왔다. 에이판다파트너스는 대형 상업용 부동산과 사회간접자본(SOC) 담보 대출채권을 신탁에 편입하고, 이를 디지털화(토큰증권)해 투자·유통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신한투자증권, 이지스자산운용, EQBR홀딩스 등이 합작한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부터 외부 시드 자금을 유치하며 운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토큰화 기술은 기존에 소수 고액 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던 대형 부동산이나 인프라 투자를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열어주는 혁신을 가져왔다. 인공지능 기술이 그동안 고착화돼 있던 펀드 운용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실례다. 탈중앙화 자율조직(DAO) 형태의 펀드와 스마트 컨트랙트(계약)를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 또한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이고 투명한 펀드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펀드 4.0시대를 향한 움직임은 뚜렷하다. 대표적인 변화가 퀀트 펀드와 로보어드바이저의 진화다. 콴텍, 파운트, 핀트 등 핀테크 기반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시장을 이끌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실제로 로보어드바이저(RA)의 운용자산(AUM)은 올해 초 9539억 원에서 8월 말 기준 1조574억 원으로 늘어나며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퇴직연금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확산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 내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를 혁신금융으로 지정하고 투자 한도를 완화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전통 대형사들도 AI 기반 퇴직연금 알고리즘을 내놓고 있으며, 증권사들 역시 잇달아 로보어드바이저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국부펀드 역시 AI 투자 행보를 넓히고 있다. 한국투자공사(KIC)는 최근 공공기관 해외투자협의회에서 KIC는 AI 산업을 하드웨어, 클라우드, 언어모델 등으로 세분화해 선도 기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하며, 데이터센터 건설과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주요 기회로 꼽았다. 에이전트 AI와 인공일반지능(AGI) 등 미래 변화를 고려할 때, 국부펀드 차원에서 전략적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이처럼 펀드의 진화가 가속할 수록 제도와 규제도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록체인, AI 기반 펀드, 토큰화 자산 등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기존 규율 체계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지난 정부는 2023년 토큰증권(ST)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제도권 편입의 문을 열었지만, 발행·유통 인프라 구축과 사후 감독체계는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평가다.

금융당국이 운영 중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실험 무대로 기능한다. 블록체인 기반 투자 플랫폼이나 RA 퇴직연금 서비스는 금융 샌드박스를 통해 허용된 뒤 본격 제도화 논의로 이어졌다. 다만 규제 샌드박스가 신기술 활용의 시험대 역할을 하면서도 한시적 실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식 제도권에 편입될 수 있도록 후속 입법이 이어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원칙 중심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과 국제적 규제 협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세대별 투자자 보호, 시장질서 유지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 유연한 틀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시장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자 교육, 리스크 관리 강화 등의 노력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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