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성 미스매치·시장 변동성 노출 등 구조적 리스크 부각
한미 모두 규제장치 마련 속도… 지속가능성 관건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를 담보로 활용하면서 ‘안전자산 의존의 역설’이 주목받고 있다. 국채는 전통적으로 시장 안정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스테이블코인과의 과도한 연계는 되레 유동성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디페깅 사례가 반복되며, 미국과 한국은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28일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1위 테더(USDT)의 1분기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테더는 현금성 자산 1216억 달러 중 985억 달러를 미국 단기채로 보유하고 있다.
최근 들어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의 주요 수요처로 떠오르면서 양자 간 상호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은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와 미 국채 시장 간 연계성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현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국채는 재정적자 확대, 신용등급 강등, 인플레이션 리스크 등으로 안전자산의 지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스테이블코인 역시 이러한 변동성에 직접 노출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국채 시장의 유동성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경우,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준비금을 현금화하지 못해 상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24시간 거래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과는 달리 채권시장은 주말 등 일부 시간대에 닫혀 있어 유동성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수급 충격으로 이어져 더 큰 시장 변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담보 자산의 불안정성은 디페깅(가치연동 실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2위 USDC는 달러 페깅이 일시적으로 붕괴하며, 일부 거래소에서 가격이 0.85달러까지 하락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일중 변동률이 3% 이상일 경우를 디페깅 이벤트로 정의할 때, 2022년 한 해 동안 대형 스테이블코인에서만 707건, 전체 기준으로는 2348건의 디페깅 사례가 포착됐다.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취약성은 테라-루나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담보 없이 알고리즘 방식으로 가치를 유지하려던 USD테라(UST)는 2022년 페깅 붕괴 이후 자매 코인 루나와 함께 폭락했고, 약 60조 원 규모의 글로벌 투자 피해를 초래했다. 이후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1:1 달러 기반 담보 자산 확보를 의무화하며 유사 사태 방지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장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에 발의됐거나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과 '디지털자산혁신법'에도 관련 규제가 일부 포함돼 있었지만, 업계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스테이블코인을 별도의 법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여야는 이날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위한 전용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인프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안정성뿐 아니라 거시경제 변수에 따른 리스크까지 반영한 정교한 운용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한 가치 연동을 넘어, 국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의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지속가능성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