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지위·인가 요건 부재로 산업 인프라 위축
디지털자산기본법, 구조적 전환 계기 될까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지만, 산업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은 시장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을 거래하기 위해 계좌를 만든 국내 이용자가 1000만 명에 도달했지만, 각종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인허가를 비롯한 제도 미비로 사업 추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다. 관련 업계는 업권별 인가제 도입 등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통해 제도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17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가상자산 거래 가능 이용자는 970만 명으로, 상반기 대비 25% 증가했다. 최근 시장의 활황세를 고려하면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상자산 통계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위 업비트의 이번 달 일평균 거래량은 25억9948만 달러(3조6148억 원)로, 전월 대비 66% 급증했다.
반면, 가상자산사업자(VASP)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달 27일 기준 신고 수리를 마친 사업자는 총 27개사에 불과하다. 올해 1월 42개사에서 2월 31개사로 감소한 데 이어 6월에는 추가로 4개사가 줄었다.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산업 인프라는 오히려 위축되는 양상이다. 특히 업권별 인가나 자본 요건이 명확하지 않아 법적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기존 금융권은 신탁업 인가나 종합금융업 라이선스 등으로 구분돼 있으나, 가상자산은 자산으로서의 법적 지위부터 불분명하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 등에서도 거래 중개업 중심으로만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율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빗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인가 및 라이선스 체계의 부재는 그동안 가상자산 산업의 성장을 저해해왔다. 시장 형성에 주요 역할을 하는 수탁(커스터디) 등 인프라 사업자들도 법적으로는 단순 신고 수준에 머물러 있어, 예금자 보호나 도산격리 같은 투자자 보호 장치는 미비한 상태다. 이로 인해 기관투자자의 본격적인 시장 유입이 지연됐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6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안은 가상자산업을 ‘인가제, 등록제, 신고제’로 구분해 시장 진입을 체계화했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자산매매업 등 3개의 인가제 유형, 디지털자산집합관리업 등 4개의 등록제 유형, 디지털자산주문전송업 등 2개의 신고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또 ‘영업행위 준수사항’ 항목을 통해 업권별 업무 내용도 규제한다.
법무법인 세종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제정되면 가상자산사업자는 유형별로 어떤 분류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식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인가·등록·신고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사업부문 분리, 법인 구조 개편, 겸영 관리체계 구축 등이 요구되면서 구조적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가상자산 생태계는 금융·기술·산업이 융합된 복합 구조이기 때문에 단일 규제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커스터디, 결제, 토큰화 등 신뢰 기반 인프라 구축과 함께 금융 및 산업 간 협업을 유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정비하고, 관계기관 간 역할을 조율할 거버넌스 체계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